☞ 이상귀(李上貴)
일제 강점기인 1944년경 일제의 강압정책으로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 전북교구(日本基督敎 朝鮮長老敎團 全北敎區)가 발족되어 예배예식을 제한시키고 신사참배를 강요했을 당시 이에 맞서 심혈을 기울여 교회 지키기에 힘을 썼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재건구령(再建救靈)과 국민생활안정에 힘썼다. 또한 2년제 중학과정의 유치원과 보모양성(保姆養成)을 위한 제일보육학원(第一保育學院)을 설립하고 원장에 취임하였는데 그 후 이 학원을 3년제 가정여학교(家政女學校)로 발전시켜 그 교장에도 취임하였다.
☞ 이서원(李瑞遠)
여산현 출신의 조선 중기 무인이다. 자는 선영(善英),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첨지중추(僉知中樞) 사진의 아들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순찰사(巡察使) 이광근(李洸勤)을 쫓아 용인에 가서 백광언(白光彦)과 더불어 출전했는데 백광언(白光彦)이 전사하자 이서원이 말을 달려 적진에 들어가 적 2명을 사살하고 백광언(白光彦)의 시체를 수습하려다가 적에게 포위되어 적을 꾸짖으며 힘있는 대로 싸웠으나 미치지 못하고 전사하였다.
☞ 이 석(李 錫, 1769∼?)
익산군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이다. 자는 정지(精之), 본관은 전주(全州)로, 생원 득일(得一)의 아들이다. 1795년 식년사마시(式年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80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청송부사(靑松府使), 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을 역임했다.